19일 목동 삼성과 우리 히어로즈전에서 7-9로 삼성이 뒤진 7회초 1사 2루에서 7번 채태인이 시즌1호 동점 투런 홈런을 날린후 더그아웃을 향해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
‘0-8이라, 이거 초반부터 점수 차가 꽤 벌어지는데.’ 6월 19일 목동 삼성과 우리 히어로즈 경기를 관전하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히어로즈의 클리프 브룸바는 2회에만 프로통산 6번째의 1이닝 2홈런을 기록하며 혼자서 4타점을 쓸어 담고 있었다.
이에 반해 삼성 선발투수 배영수는 1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6안타, 2볼넷으로 7실점을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참이었다.
경기 초반 대량실점은 삼성에겐 재앙이었다. 올시즌 삼성은 6실점을 한 경기에서 2승 21패 승률 8.7%를 기록하고 있었다. 8개 구단 가운데 최저 승률이었다. 7회 이후의 성적은 더 극명했다. 7회 이전 리드 시 27승 무패로 승률 100%를 기록했지만 7회 이전 열세 시는 1승 31패로 고작 3.1%의 승률을 올리고 있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기록만 보면 삼성은 ‘지키는 야구’와 ‘버리는 야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팀이었다.
3회초 삼성 채태인이 타석에 들어설 즈음. 문득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양팀 점수판에 새겨진 ‘0’과 ‘8’에 선명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고작 0-8 이야. 포기하지 마라. 0-122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있었단 말이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일본. 1998년 7월 18일 어느 경기에서 ‘0-122’라는 믿기지 않는 점수가 나왔다. 언뜻 럭비나 농구 점수로 보이지만 실은 고시엔 고교야구대회 아오모리현 예선전에서 나온 스코어였다. 일본야구 사상 최고 점수 차를 기록한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후카우라 고교와 히가시오쿠키주쿠 고교였다.
당시 히가시오쿠키주쿠고는 고시엔대회 4회 출전 경력의 지역 내 강팀이었다. 이에 반해 후카우라고는 팀원이 불과 10명밖에 되지 않는 초미니 팀이었다. 게다가 10명 가운데 6명은 고교 때 처음 야구를 접한 초보선수들이었다. 그렇다고 나머지 4명이 ‘야구에 능숙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내야수 가운데 어느 누구도 1루를 향해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이날 생중계를 담당한 아오모리현 지역방송국의 한 해설가가 후카우라고 내야수들의 펑고를 지켜 본 뒤 “오늘 경기는 무조건 50, 60점 차 이상”이라고 공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후카우라고의 펑고를 해설가만 본 건 아니었다. 히가시오쿠키주쿠고의 감독도 고민에 잠겼다. ‘최약체 후카우라고와의 경기에 힘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란 의문이 든 것이다. 사실 후보 선수 만으로도 콜드게임 승이 가능했다. 그러나 히가시오쿠키주쿠고는 결국 최정예 멤버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는 게 이유였다.
예상대로 히가시오쿠키주쿠고는 1회부터 후카우라고를 밀어붙였다. 1회에만 39점을 올린 데 이어 2회부터 7회까지 꾸준히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7회 콜드 게임이 선언될 때까지 히가시오쿠키주쿠고가 올린 점수는 무려 122점이었다. 이날 히가시오쿠키주쿠고 타자들은 149번이나 타석에 등장해 86안타(이 가운데 2루타 31, 3루타 21, 홈런 7개), 사사구 36개, 도루 78개를 기록하는 터무니없는 공격력을 선보였다. 특히나 이 팀의 4번 타자는 사이클링 히트를 2번이나 기록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반면 후카우라고 타자들은 25번 타석에 들어서 1개의 안타도 때리지 못한 채 삼진 16개를 당하며 노히트의 희생양이 됐다. 7회 콜드게임이 선언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3시간 47분이었다. 122점이라는 스코어를 감안할 때 예상외로 일찍 경기가 끝난 셈이었다.
다음날 일본 언론에서 앞 다퉈 '0-122' 경기를 토픽감으로 다뤘다. 한낱 지방 고시엔 고교대회 예선전이 일본사회의 화두로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경기는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맞물려 ‘무모함과 최선’, ‘약자에 대한 예의와 강자의 횡포’라는 주제로 풍성한 담론을 이끌어냈다. 사람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후카우라고에 대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싸웠다”는 반응이 대부분인 가운데 “애초에 참가하지 말았어야 하는 팀”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히가시오쿠키주쿠고에게는 “승리에 눈이 멀었다”, “고교생답지 않았다”는 비난과 “자만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격려가 동시에 쏟아졌다.
이 경기가 논란만 빚은 건 아니었다. 경기 뒤 후카우라고는 학교 전체가 변했다. 교칙 위반자와 정학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학생수 격감으로 폐교 직전이었던 학교도 어느 정도 정상을 되찾았다.
경기 진행방식도 바뀌었다. 일본고교야구연맹은 지방대회마다 제각각이던 콜드게임 기준을 2000년부터 5회 이후 10점 차 이상, 7회 이후 7점 차 이상으로 통일했다. 아오모리현에서 열리는 경기에선 그간 5회 콜드 게임이 없어 후카우라고는 122점을 내주고도 7회까지 경기를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 경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나가와현 도덕 교과서에 실리며 아이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는 교훈을 선사했다.
훗날 밝혀진 이야기지만 당시 후카우라고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희들이 원하면 언제든 몰수게임이 선언될 수 있다”며 포기의사를 물었다. 선수들도 몇 번이고 기권을 선언하고 싶던 차였다. 그러나 경기는 계속됐다. 경기 진행을 재촉하는 심판과 관중의 열띤 성원으로 도저히 포기할 엄두를 내지 못한 까닭이었다.
히가시오쿠키주쿠고도 마찬가지였다. 점수 차가 너무 큰 바람에 자칫 상대에게 ‘잔인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큰 점수 차가 난다고 경기를 흐지부지 마무리하면 그것이야말로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감독의 뜻에 따라 마지막까지 총력을 다 했다.
후카우라고는 다음해 고시엔 고교대회 아오모리현 예선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다시 참가했다. 결과는 이번에도 ‘0-54’ 대패였다. 다음해도 참가했지만 역시 승부는 ‘4-19’로 콜드게임 패였다. 그러던 것이 2001년에는 ‘11-12’ 1점 차까지 따라붙을 수 있었다. 결국 후카우라고는 2004년 아오모리현 예선전에서 만난 마쓰카제고를 ‘13-6’ 7회 콜드게임으로 이기며 창단 19년 만에 감격의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해 후카우라고는 교육청으로부터 ‘2007년부터 기주쿠리고의 분교로 개편될 예정’이라는 통고를 받았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기주쿠리고 후카우라 분교’로 교명이 변경됐다. 신입 야구선수도 2005년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그러나 후카우라고가 일본인들에게 던진 ‘절대 포기하지 마라’는 메시지는 1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도 수많은 일본의 야구소년들이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0-122’ 경기가 열렸던 아오모리현 구장에 찾아가 ‘최선’과 ‘근성’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딱.” 3회초 선두타자로 나온 채태인이 좌중간 안타를 기록하며 루상에 출루했다. 이어 연속안타가 터지며 삼성은 3회에만 대거 5점을 따내는데 성공해 ‘5-8’로 우리 히어로즈를 바짝 쫓아갔고 9회초에는 ‘9-10 ’까지 따라가는데 성공했다. 삼성의 ‘지키는 야구’뿐만 아니라 ‘역전의 야구’도 볼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은 것일까. 많은 삼성팬들이 스탠드를 떠나지 않고 열심히 응원에 매달렸다.
우리 히어로즈 구원투수 황두성이 폭투를 범했을 때는 목청껏 “한 번 더”를 외치기도 했다. 때론 농감 같은 바람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거짓말처럼 황두성이 똑같은 폭투를 범하며 ‘10-10’ 동점을 만드는 게 아닌가. 삼성팬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푸른 피’의 타자들에게 박수를 보냈고 <스포츠 춘추>는 끝까지 선수들을 믿고 응원한 삼성팬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삼성의 추격전은 9회말 우리 히어로즈 김동수의 끝내기 안타로 끝이 나고 말았다. 애써 케첩 뚜껑을 열었는데 누군가 슬쩍 케첩 병을 들고 갔을 때처럼 삼성팬들의 표정에 허탈함이 역력했다.
어쩌면 삼성 코칭스태프는 ‘일찌감치 경기를 포기해 주전선수들의 체력을 비축하는 게 좋았을 뻔 했다’라며 후회했을지 모른다. 가뜩이나 선발진이 무너지고 노장선수들이 즐비한 삼성에겐 휴식이 곧 전력이다.
하지만 삼성은 분명 ‘0-8’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그건 때론 정정당당한 패배가 얄팍한 수로 따낸 승리보다 팬에게 더 큰 감동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적당히 이기고 적당히 점수를 내는 건 야구에선 미덕이 아니라 무례일 수 있다. 근간 들어 야구계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야구에 대한 무례'를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